메뉴 건너뛰기

산돌교회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새로운 삶
2018.08.29 23:14

4. 성령 충만한 생활

조회 수 217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시작하여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진실하지만 영적으로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그룹을 발견했다. 바울이 오기 전 그들의 선생은 아볼로라 이름하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열심 있고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것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제한된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사역과 세례 의식에 관한 것을 알고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 구원에 관하여는 매우 조금 알았던 것처럼 보였다. 바울이 그들의 약한 조건을 깨달았을 때 그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정직하였고, 그들의 영적인 빈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더 교훈 한 후에 이 정직한 구도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었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왔다. 그리고 그들은 방언과 예언을 했다"(행 19:1-7).

우리가 바울의 편지들로 돌아갈 때, 우리는 그가 조직적인 방법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의 편지들은 기독교 교리의 책들을 주의 깊게 조직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성령에 관한 사역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은 그 주제가 그의 생각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편지의 대부분 모든 페이지에서 성령에 관하여 혹은 인간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한 바울의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면 가운데 하나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이다. 바울에 의하면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 어떤 것, 어떤 분이 아니다. 모든 삶의 원천이신 오직 한 하나님만이 있으며, 세 신들이 아니다. 우리는 세 분리된 신들로 취급하지 않고, 한 분은 아버지, 한 분은 아들, 그리고 한 분은 성령으로 불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전체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지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그는 유대인의 성경에 그에 대하여 명시된 것으로써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말했고, 그를 섬기는 것에 대하여 찾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후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는 항상 이 새로운 경험에 대하여 말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롬 15:6) 였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사람에게 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고후 4:6)을 통하여 보여 주기를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 혹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계시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던 이 창조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로 우리 시대에 들어오셨다.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세상에서 활동하신다. 이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었다. 성령 혹은 거룩한 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이었다.

열심인 구도자의 한 그룹이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불완전하였다는 것이 명백하였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그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영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지금 활동하고 계심을 볼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분하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에베소 구도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리고 이 교훈과 주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따라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고, 그의 존재와 그의 활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바울이 같은 실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름을 사용한 이유와 자주 바꾸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때때로 그는 "그리스도 안에", 때때로 "주 안에", 그리고 때대로 "성령 안에" 있는 존재로 말한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때때로 "그리스도의 영"에 대하여 말한다. 때때로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리고 다른 때에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성령", 혹은 당신은 "성령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부주의나 혼동된 기록 방법이 아니다. 정말로 한 위대한 실제를 이같이 다른 방법들로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최상의 설명들 가운데 하나는 로마서 8:9-11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우리 속에서 사역하는 방법들

바울의 경험과 저작물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역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수집하고 진술하는 것이 가능하다.
1.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한다. 바울의 돌이킴을 볼 때,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듣기 오래 전에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자신을 택정하였다는 것을, 그의 은혜로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믿었다(갈 1:15-16).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창조물들은 달성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이 달성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이었다(롬 8:19-25). 이 그리움을 자극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의 사역이었다. 바울의 마음을 이해했던 어거스틴은 "주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 자신을 위해 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안식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간단하고 심오하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혀 위에 소금을 두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를 갈망한다". 이 마음의 불안함과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찾고 있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한 증거이다.
2. 성령은 우리를 재창조한다. 성령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간다. 바울은 사람이 그 안에 있는 성령의 사역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 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고전 12:3). 성령의 내주 역사 하심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를 보면서 우리는 그에게 자신을 넘겨주는 것에 의해 응답할 수 있다. 이 넘겨주는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사역에 대해 자신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는 대신에 우리는 지금 성령을 허락한다. 이 돌이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속으로 쏟아졌다(롬 5:5).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이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에 의해 발생했다. 이 이유 때문에 바울은 정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고전 15:10).
3. 성령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우리에게 도장을 찍는다. 바울은 부드러운 왁스 위에 도장찍는 예를 좋아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에베소서에서 그는 두 번이나 성령의 활동을 묘사하기 위해 이 예를 사용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1:13; 4:30).
이 예는 우리가 성령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갈망을 묘사한다. 그의 날인이 우리에게 있다. 신성한 감동에 대해 유연하게 되거나 저항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자유가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성령이 우리에게 증명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성령에 대해 지속적인 개방, 혹은 끊임없이 항복을 되풀이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4. 성령은 굴복하는 삶 속에서 열매를 생산한다. 성령은 굴복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품질을 재생산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것은 바울이 "육체의 일" 과 "성령의 열매" 사이를 만든 대조를 볼 수 있는 최선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육체의 일은 성령의 사역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특성으로 묘사한다. 육체의 삶은 자기 중심의 생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그리고 그의 성령에 대한 무응답이다(갈 5:19-21). 육체의 일은 두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때때로 "육적인 죄들(부도덕, 술취함, 방탕함)" 그리고 "영적인 죄들(질투, 이기심, 당 짓는 것)" 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지, 그들은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인 죄를 반복한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 나쁘고 열매 없는 관계들을 보여준다. 삶에 사회적 부정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나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삶의 두 국면은 하나의 조각이다.
그러나 성령 안에 있는 삶은 엄청나게 다르다. 사랑, 인내, 충성, 온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 속에서 경험되어진다. 성령의 사역은 굴복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삶의 특성이 사회적 관계들을 창조하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성령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생활의 모든 관계 속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5. 성령은 하나님의 봉사에 사용하기 위해 각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선물들을 준다. 성령의 사역중 이 중요한 면은 바울의 서신에서 약간 길게 두 부분으로 묘사되었다(고전 12:4-30, 엡 4:1-16). 여러 가지 영적인 선물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하기 위하여" 교회의 다른 회원들에게 주어진다(엡 4:12, 13).
6. 성령은 하나님의 봉사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에 대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후에 그들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시도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였다"(행 16:6-10). 우리는 들리는 소리가 그들에게 뚜렷한 방향을 지시했
다거나, 타는 듯한 검을 가진 천사가 이 지역들로 그들의 들어감을 가리켰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성령의 인도는 우리에게 힘든 생각과 어려운 결정을 경감시키지 않는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 장면은 우리에게 믿음의 입장 혹은 인간의 응답으로써의 개방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의 필요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중요한 문제는 유연하게 되는 것과 "여는 것", 순종 그리고 모험을 위한 준비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롬 8:14).
7. 성령은 기도에 있어서 우리를 돕는다. 때때로 우리는 혼란하거나 약하다. 우리는 기도를 위하여 말씀도 성령도 없다. 이러할 때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6-27) 라고 말했다. 우리의 가장 친밀하고 숨겨진 힘의 원천인 성령은 우리가 가장 약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성령은 우리의 창조자이며, 우리의 영혼의 집인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연결한다.

어떻게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을까?

마침내 우리는 한 중요한 질문을 해본다. 어떻게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삶에 접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응답은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이 질문에 대하여 적어도 직접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성령에 대하여 종종 썼음에도,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고 있는 것은 뜻밖이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에게 약간의 빛을 주는 두 부수적인 절이 있다. 엡 5:18절에서 그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고 썼다. 그 대조는 그릇된 흥분과 진실된 흥분이다. 외적으로 보이는 삶이 열성에 설복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우리 역할은 매우 수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당연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살전 5:19에서의 "성령을 소멸치 말라" 는 명령은 부정적이다. 바울의 이 간곡한 권고는 만일 우리가 작정한다면 우리에게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동시에 성령의 사역에 대한 우리의 커다란 공헌은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도록 그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의 응답은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이 "개방"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물론 빈 단지를 채우는 것과 전혀 같지 않다. 그는 빈 공간을 채우는 비인격적인 "재료" 에 비유될 수 없다. 성령은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용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처럼 성령의 내재를 생각해야 한다. 계 3:20에서 발견되는 그림을 통하여 우리는 바울이 은혜, 믿음, 그리고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을 움직이는 그림처럼 볼 수 있다. 결국 "어떻게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내가 구원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 역할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예" 라고 응답하는 것에 있다. 우리의 역할은 믿음이다. 그 결과는 교제로써의 구원, 혹은 성장을 위한 친밀한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할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넓게 여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발생했을 때, 한 우대한 친구가 우리 속으로 들어온다. 그를 이겨낼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격과 개성이 그 속에 침수된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가 오기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그는 우리의 위대한 힘의 원천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일과 관심사들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커다란 기쁨이다. 이 친구와 함께 나눔을 통한 친교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삶의 가장 부유한 특권이다. 이 우정은 우리 삶의 모든 국면,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와 우리가 사는 목표들에 영향을 미친다. 정말로, 우리의 우리 된 것은 이 우정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의 위대한 증거들에 대한 배경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 2:2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6 새로운 삶 5.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의 은사들 admin 2018.08.29
» 새로운 삶 4. 성령 충만한 생활 admin 2018.08.29
4 새로운 삶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관습들의 다양성과 통일성 admin 2018.08.29
3 새로운 삶 2. 새로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 admin 2018.08.29
2 새로운 삶 1.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함 admin 2018.08.29
1 새로운 삶 들어 가면서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admin 2018.08.29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