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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
2018.08.29 23:15

5.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의 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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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선교사역은 주로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주요한 도시들 중 많은 곳에 교회들을 정착시키는데 있었다. 그는 정착시키는 것이 자신의 주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삶은 실제로 작은 규모의 몸부림치는 교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았다. 그는 한때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고 썼다.
그의 편지 대부분은 이 지역 교회들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그는 그들에게 예배에 대한 옳은 방법들을 가르쳤다(고전 14장). 그는 그들이 자신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질 때 그들에게 경고했다(갈 1-3장). 그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다(고전 7장, 엡 5장).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선물에 대하여 감사했다(빌 4장).
이 교회들의 회원들을 "성도들"이라고 불렀다(고전 1:2; 엡 1:1; 롬 1:7; 빌 1:1).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특별하게 분리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에서 거룩하였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불완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교만한 여인들의 다툼으로 인하여 교회의 연합이 위협을 받았다(빌 4장). 어떤 사람은 그 아비의 아내와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다(고전 5장). 어떤 이는 주의 만찬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취하였다(고전 11장). 다른 이들은 게을렀다(살후 3장).
그러나 이 흩어진 그리스도인의 교제들 안에 있는 연약함과 불완전함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승리에 대한 밝은 희망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주님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가 예배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한 복음의 중심적인 증인이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위대하고 강력한 힘의 원천이었다. 바울은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함"(고전 1:26)에 대하여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이 단체들이 하나의 특별한 의미의 경로였음을 믿었다.
그는 이 교회들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0-11)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지역의 한 부분에서 경배하고 증거하는 단체들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몸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단지 지역 교회의 회원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같은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을 때, 그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속죄의 목적에 대한 한 부분이었다.
우리가 때때로 우주적인 교회라고 부르는 이 위대한 그룹에 대하여 바울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말은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한다.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몸의 여러 부분을 이룬다. 하나님을 통하여 머리와 몸이 결합되어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는 특별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활동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동시에 하나로 연합되었다. 몸의 지체들은 분리되어 살 수 없다. 지체로써 우리의 삶은 전체 유기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끌어 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고, 각 지체에게 속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했을 때, 즉시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안에서 나눌 수 있는 연합을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연합은 그 시대의 위대한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는 결코 유대인과 이방인의 오래된 인종과 문화적인 장해가 깨뜨려진 경탄할 만한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엡 2:11-22).
그리스도인의 연합이 기독교 세계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활발한 담화의 주제인 이 시대에 있어서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근본적으로 지역교회를 어떤 커다란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분리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모든 사람이 동의할 공적인 예배의 한 형태를 발견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회행정의 한 형태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단순하게 우리의 조직과 행정 기술을 통하여 오래지 않아 통과하게 될 것을 신뢰하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이제 사실이다. 우리는 생생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다. 그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생명적으로 몸의 다른 모든 지체들과 관계되었음을 말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시작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었다는 것과 그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특수한 방법으로 경배하는, 그리고 기독교계의 위대한 전통중 하나를 나타내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침례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접촉, 구원, 교회는 죄가 아니다. 아주 명백하게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역할로써 이것을 사용했다. 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이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실제적인 연합에 대해 눈멀지 않도록 명령한다. 우리는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관계는 물론 그 몸에 있는 지체들의 다양함과 부요함에 대한 감사와 성장이 필요하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주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며, 각자 그 몸에서 수행하기 위한 분리된 역할들을 가지고 있다.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에 의한 어떤 은사가 주어졌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 4:7). 바울은 끊임없이 주어진 다양한 은사들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한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다양한 은사들, 혹은 역할들을 준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그의 편지 세 곳에서 바울은 확인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약간의 목록을 포함시킨다(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 이것은 예언, 가르침, 병고침, 지혜, 능력행함, 방언등의 은사들을 포함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타고난 재능들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교회의 섬기는 사역들을 위하여 사용할 성령의 은사들이다.
성령의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몸 전체를 건강하게 성장하는 조직이 되도록 갖추는 것이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은 수행하기 위한 어떤 역할들을 가지고 있다. 각자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졌다. 어떤 사람은 뼈, 어떤 사람은 근육, 어떤 사람은 조직이다. 어떤 사람은 눈, 다른 이들은 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손이다. 각자 몸에 특별한 공헌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에 의하여 갖추어졌다. 모두 필요하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 12:26).
약하고 불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을 경험한 바울은 그들에게 영적인 은사들의 사역에 관한 두가지 존재하는 위험에 대하여 확인할 것을 가르쳤다. 첫째는 자랑을 통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유혹이었다(롬 12:3). 둘째는 항상 절망에 빠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할이 하찮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랑하는 자들은 실제로 눈에 잘 띠질 않는 자들과 전체의 한 부분임을 잊도록 유혹 받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 없어" 라고 말하는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이같은 말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1).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절망을 했다. 그들은 다른 지체들과 비교해서 하찮고 쓸모 없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말하는 것에 유혹 받았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니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니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손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 뿐 아니라 몸의 어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어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려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15-25).
바울 시대와 그 후 모든 시대에 있어서 특별한 은사들을 과대평가하고 영향이 큰 기능들을 제외한 것들은 과소평가하는 유혹이 끝없이 있었다. 코린트(그리이스 남부의 항구; 고대 그리이스의 상업, 예술의 중심지)에서 방언의 중요성에 대해 과장하였다. 바울은 이 은사가 교회 생활에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언이나 가르침처럼 가치가 있지 않다고 믿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5-19).
어떤 은사는 다른 것보다 더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영적인 은사들을 바라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의 경고의 말은 "진지하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는 것이었다.

사랑 - 가장 위대한 은사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그의 논점 한가운데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많은 저작물 중 가장 위대한 장이라고 믿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을 가지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들을 지키기 위하여 이 장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위대한 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전체적인 논의에 대한 관계 안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성령의 어떤 은사에 대한 갈망을 가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들을 위한 이 갈망은 은사들 자체의 영광, 혹은 위력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어떤 눈부신 재능을 찾는 것에 대한 수준으로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 이 경우 자랑은 섬기기 위한 갈망을 이길 것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만을 위하고 자랑만 일삼는 삶을 매우 반대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삶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혹은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격려한다. 그는 계속해서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고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성령의 가장 위대한 은사인 사랑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바울은 이 사랑에 대해 세 가지 일면으로 강조했다. 즉 "사랑의 송가"라고 불리 우는 이 장을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1. 사랑을 대신 할 것은 없다. 다른 은사들과 봉사들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놀라운 방언들의 은사와 천사의 웅변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말하는 자가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 없으면 오직 많은 소리일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가장 명백한 말들도 공허하고 힘이 없다.
이것은 또한 다른 은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찰력, 지식, 그리고 이해력 또한 사랑을 제외하면 작은 가치일 뿐이다. 확실하게,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을 요구하지 않고 기계적인 기술과 함께 요구되어질 수 있는 과학적인 지식의 종류이다. 미얀마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토양들과 바위들에 대한 분류는 필요한 기술적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 그러나 바위들로부터 사람에게로 옮겨지게 지면 사랑이 빠진 작은 통찰력과 이해력은 매우 명백해진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통찰력과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것은 신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개방 혹은 신뢰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신앙과 그가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적인 믿음은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허락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개방을 의미한다(롬 5:5).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추상적인 지적 지식은 쓸모 없다. 그리고 실제의 속임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순교자처럼 자신의 삶을 주는 관점에서의 관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별도로 하고 돈 혹은 삶을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 그러한 섬김은 우리를 선하게 느끼게 만드는 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관용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제의 종류는 실제적으로 자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더욱이 자랑의 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구제에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실제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대신 할 것은 없다. 만일 사랑이 거기에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은사들은 사랑의 존재에 의존한다.

2. 사랑은 하나님 같은 삶 혹은 예수님 같은 삶을 의미한다. 바울이 성령 충만한 삶 혹은 사랑 충만한 삶으로 묘사하고 있는 삶은 그것에 의해 표현될 것이다. "사랑은 인내하고, 친절하고 ...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전 13:4, 7 ; 4-7절을 읽으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 모두 나타났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골 1:1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육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명백하게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본다. 따라서 사랑에 관한 이 묘사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다. 다른 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온전한 자기주심을 묘사했다(빌 2:1-11). 예수 그리스도,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러므로 사랑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것들과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 불공평을 참는다. 그리고 사랑 받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완전하게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성령의 은사는 신성한 본성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삶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삶에 대한 표현을 나눈다. 그 결과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다(갈 5: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은 세상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3. 사랑은 영원하다. 그것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넘어갈 수 없다. 다른 은사들과 활동들은 불완전한 특징들을 낳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변할 것이다. 지식은 변하고, 우리의 가르침은 불완전하고, 방언은 그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고 .... 사랑은 지속된다". 은사는 사랑보다 더 할 수 없다. 때때로 사랑은 고난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세상 안에서 거듭되는 실패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랑을 제외한 우리를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조차 사랑은 궁극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사랑을 제외한 그를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령의 가장 위대한 은사이다. 가르침, 설교, 경영과 함께 분리된 은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다른 모든 은사들을 유용하게 만드는 특징(질)이다. 이와 같이 그것은 모든 것을 유용하게 한다. 모든 사람은 사도들, 교사들, 복음주의자들, 경영인들이 될 수 없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은사들을 갈망할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작정된 것이고, 모두에게 유용하다. 그 이유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가장 좋은 은사를 진지하게 갈망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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